말하기 싫은데 말해야 할 때,
그러니까 어떠한 의무에 의해 입구멍을 열고
혓바닥을 움직이면서 목청에서 음파 에너지를 생성시켜야 할 때,
나는 지금 내가 이러고 있다는 걸 다이렉트하게는 표시내지 못 히고,
차라리 싱글싱글 웃는 표정을 짓는다.
의식적인 건 아니다. 나 개인의 오래된 악습이겠다.
나는 그냥 그렇게 된다.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말하기 싫은 건데 행여 오해하게 만들긴 싫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물론 네가 싫어서일 수도 있다. 나는 여하간 말하는 게 힘들다.
조잘조잘 수 십 분 넘게 말하고 나면, 며칠 간 방전이 된다.
그래도 엄연히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교류라는 걸
아예 안 하고 살 순 없기에 종종 만나서 듣고, 말하고, 듣고, 말한다.
그게 힘들다. 말 대신 차라리 글로 교류하는 게 나는 편하다.
엑기스만 주고 받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즉각 반응하지 않고 좀 숙고해볼 여유도 있으니 말이다.
부담스럽게도 그 사람의 눈을 봐야 한다는 것.
분위기 파악도 해야 하고, 지금 이게 구라인지 아닌지 즉각 분별해야 하고
때에 따라선 물리적 액션도 취해야 한다는 것. 여러모로 불편하다.
심지어 들으나마나 한 고민들, 그리고 하나마나 한 위로와 충고들이
주가 되는 토크의 순간엔 맘 속 깊은 곳에서
그냥 빨리 집에 가 소파에 눕고 싶다는 청원이 울려퍼진다.
그러고 보면 토크쇼 MC의 가장 주된 힘은 말을 잘하는 것도,
필요한 말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라,
아니다 싶을 때 상대방의 말을 자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헛소리 하는 사람을 닥치게 만드는 힘.
무엇보다 말하기 싫은데 말해야 해서
썩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나 자신을 닥치게 만드는 힘.
그런 힘은 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