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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을 읽으면 계속 의문이 생겨

by miss s#.♁ 2019. 7. 1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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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 

그리고 이제 같이 가보자.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소설은 대개 내면의 흐름을 

쫓아가기 마련이다. 그건 좋고 말고가 없다. 

 

다만, 주인공이 자기 내면에서 읊어대는 어휘들이 수준이 너무 높으면, 

나는 내용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일테면, 

 

채 밝지 않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눈뜨며 

고통스러운 꿈의 여운이 남아 있는 의식을 더듬어 뜨거운 '기대'의 감각을 

찾아 헤맨다  (오에 겐자부로 - 소설 <만엔원년의 풋볼> 오프닝)

 

같은 문장이 접하는 순간, 

이건 아무리 양보해도 주인공이 꽤 높은 수준의 문장가가 아니면 

절대로 내면에서라도 내뱉을 레벨이 아니란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부류의 1인칭 주인공 시점들의 소설 속 주인공은

문장가가 아닌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저렇게 소설가들이 아니면 쓰기 어려운 문장들이 

내면에 부유하는 주인공이라니! 그 주인공은 그 허구 안에서

지금 어떠한 갈등에 처했다 해도 지금 당장 전직부터 해야 마땅하다!

소설가가 되어야 할 시스템이 갖춰진 당신은 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소설가는 필요에 따라 자신의 주인공이 실제로 쓸 법한 문장으로 

그 주인공의 내면을 구성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새벽인데 아직은 어둡다. 되게 어두운 건 아니고,  아마도 곧 밝아질 것 같아. 

이 와중에 난 눈을 떴는데 방금 전까지 꿨던 꿈. 으. 

꿈인 게 참말로 다행이다, 싶은 그런 꿈이었다.  잊자.

일단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부터블라블라블라 

 

이런 식이 좀 더 주인공이 속으로 중얼거릴 법한 문장 아닐까?

 

아마, 이런 생각을 오에 겐자부로 할배도 안 했을 리가 없겠지.

그러나 죄송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미 수 만 명이 품었을 법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행이다. 

아마, '핍진성'이나 '리얼리티', '문학적 허용' 어쩌고 저쩌고를 들먹이며 

내게 뭔가 알려주고자 시도하고픈 이도 있을 거다. 

이 본문의 첫 번째 문장 다음의 두 번째 문장을 보자.

같이 가보자고 했지만, 여기까지다. 각자 가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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